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남송 전쟁 (문단 편집) === [[양양 공방전]](1267~1273) === ||<:> [[파일:1497260622847.jpg]] || ||<:> 양양-번성의 위치 || 1267년 쿠빌라이 칸은 다시 남송을 침공하였다, 쿠빌라이 칸은 이전의 두번의 패배를 교훈을 삼아, 이전처럼 사천, 회수 남쪽의 튼튼한 요새들을 나누어서 공략하려는 전략을 버리고 거점지역인 [[샹양|양양]]-[[판청|번성]]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로 한다.[* 이는 [[유정(원나라)|유정]]이 헌책했던 것이었다.] 양양 공성전은 대량의 식량을 준비해서 10만 대군이나 되는 대병력으로[* 참고로 동유럽 원정을 나갔을 때 몽골 병력이 15만이였다. 즉 이의 2/3이나 되는 병력을 단 한 나라를 위해 쏟아부은 것이다.][* 여문덕은 이를 방치하였고 결국 거점이 완성된 이후에 병사한다.] 1267년부터 1273년까지 6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송나라도 쿠빌라이 칸이 이 거점지역을 타격하는 걸 알았기에 6년치의 식량을 비축하고 성의 방어력을 높이는 등 많은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몽골군의 작전은 지난 두 번의 침공과는 전략이 완전 달랐는데, 직접적으로 양양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 주위의 남송군을 궤멸시키는 데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양양성과 주위의 번성을 둘러싸는 환성을 건설했고, 그 길이는 무려 100km에 달했다. 남송군은 이 토목 사업을 멈추게 하려고 군사를 바깥으로 내보냈지만 빈번히 궤멸되었다. 거기에다가 그 내부의 수로를 장악해서 남송군의 보급을 막고 양양성을 말려죽이려고 했다. 특히 이는 수군의 훈련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몽골군 입장에선 일거양득 그 자체인 것이다. 이에 남송군은 수차례나 대규모로 하귀, 범문호, 장세걸, 이정지 등이 이끄는 수군을 내보냈지만, 약 4,000여 척에 다다른 몽골 제국군에게 궤멸당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송군은 특공대를 침투시켜서 어느 정도 물자를 보급에 성공하였지만 이것도 몽골이 쇠말뚝을 박아서 차단을 했다. 그리고 남송군 내부에서도 문제가 심했다. 여문환은 자신의 이득을 중시하여, 고달 등의 원군이 오는 걸 꺼리고 상황이 불리하면서도 유리한 전황이라고 허위 보고했다. 게다가 경호제치사였던 [[이정지]]와 [[범문호]][* 가사도의 사위라고 알려져 있으나, 여문덕의 사위이다.]와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범문호는 가사도에게 이정지의 명령을 무시해도 된다는 명령을 듣고, 가사도에 의해 전전부지휘사로 임명되어 매일마다 예쁜 첩을 거느리고 술을 마시며 놀았다. 이정지가 출병을 독촉하나, 범문호는 어쩌다 몽골군의 순찰 부대를 막는 등 매일 핑계대며 놀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식량을 많이 배급하고 성의 방어력을 높이는 등 많은 준비를 한데다, 주위가 습지인 까닭에 몽골군의 이점인 기병의 운용이 쉽지 않았고, 거기에 번성이 괴롭히기도 했기에 양양성은 5년이나 견뎠고, 결국 몽골군은 주위에 있는 번성을 먼저 공격하기로 하였다. 몽골군은 이슬람의 기술로 만들어진 신형 투석기인 [[회회포]](回回砲)로 번성을 공격하였다. 결국 1273년 1월 몽골군은 번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번성을 지키던 수비 대장 범천순은 미친듯이 쏟아져오는 몽골군을 보고, >"나는 살아서 송나라의 신하가 되었으니, 마땅히 죽어서도 송나라의 귀신이 되리라!" 라며 목을 메어 죽었다. 번성을 지키던 또 다른 장수인 우부는 백여명의 결사대로 무수하게 많은 적병을 베어내며 저항했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기둥에 스스로 머리를 찍은 뒤,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번성을 무너뜨린 회회포는 매일같이 양양을 포격했으며 양식은 떨어져가고,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몽골군 역시 송나라 사정에 능통한 [[여문환]]의 항복을 권했다. 결국 성 내부에서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는 의견에 따라서 1274년 3월 6년을 버틴 수비 대장 여문환이 항복해 양양이 함락되고야 만다. 이 양양의 함락으로 남송의 대몽골 방어선은 사실상 무너졌다. 여담으로 무협 소설인 [[신조협려]]에서 주연인 [[곽정]]이 참전하여 전사한 전투가 바로 이 양양 공성전이다. 물론 소설의 특성상 양양 공성전의 공로는 모두 곽정에게 돌아가고, [[여문환]], 여문덕 형제는 곽정에게 의지하는 범부로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